몇 개월이면 됩니다

CRM

하이! 소담입니다. 저는 작은 가게를 하는 사람이에요.

오해는 마세요. 제가 개발에 아예 관심이 없던 사람은 아니에요. 평소에 AI로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고, 사이드로 작은 것들도 해봤거든요. 다만 여러 사람이 매일 쓰고 계속 굴러가야 하는 업무 시스템은 좀 다른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내 수준 밖이다.” 그렇게 선을 그어뒀습니다.

그런데 가게 일이라는 게, 해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상담 기록은 여기 있고, 고객 명단은 저기 있고, 일정은 또 딴 데 있습니다. 어제 나눈 얘기를 오늘 다시 찾으려면 앱 세 개를 뒤져야 하고요. 잡무가 서로 이어져 있는데 도구는 다 흩어져 있었어요. 머릿속으로는 다 연결돼 있는데, 화면으로는 아무것도 연결이 안 돼 있는 거죠.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우리 일에 딱 맞는 관리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자. 아까 그은 선 때문에, 당연히 외주를 맡겼습니다. 작년 8월이었어요. 개발자와 처음 만났고, 제가 물었죠. 얼마나 걸리냐고. 돌아온 대답이 “몇 개월이면 됩니다”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었습니다.

…지금 1년째

예정지금

지금도 그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1년이 다 되어갑니다. 몇 개월이 반년이 되고, 반년이 1년에 가까워졌어요. 처음 들었던 “몇 개월”이라는 말이, 지나고 보니 참 멀었습니다.

더 이상한 건, 상황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이번 주에 저는 그 프로젝트의 코드와 계정을 제 손으로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외주 개발자가 아니라 제가 직접 열고, 고치고, 이어가기로 했어요. 1년 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죠.

대체 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 얘기를 하려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는 실력도, 돈도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내 환상이었다

기능 목록완성 제품?

돌아보면 문제는 견적이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제 환상이었어요.

그때 제가 뭘 믿고 있었냐면요. “내 머릿속에 그림이 있고, 기능 목록을 잘 정리해서 넘기면, 몇 달 뒤에 그 그림이 프로그램이 되어서 돌아온다.” 발주해 보신 분들, 지금 웃고 계시죠. 네, 반은 환상이었습니다.

머릿속 그림이라는 게 사실 되게 흐릿해요. “고객 관리요”라고 말하면 다 전달된 것 같은데,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저도 말로 다 못 꺼냅니다. 어떤 손님은 어떻게 응대하고, 어떤 경우엔 예외로 두고, 이건 급하고 저건 나중에… 매일 하던 일이라 몸은 아는데, 글로는 안 써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기능 목록은 넘겼지만, 진짜 중요한 건 하나도 못 넘긴 거예요.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같은 말, 다른 그림

"이 기능"

만들어지는 걸 중간중간 보는데, 이상하다기보다… 낯선 거예요. 분명히 제가 말한 기능인데, 제가 그리던 게 아니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어요. 저랑 개발자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는 걸.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꾼 거죠.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개발자는 우리 일을 매일 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현장 맥락이 없죠. 저는 개발 로직을 몰랐어요. 뭐가 쉽고 뭐가 어려운지, 어디까지가 되고 어디부터 무리인지 감이 없었고요.

서로 최선을 다해도, 사이에 있는 간극은 말로 다 안 메워집니다. 한쪽은 도메인을 모르고 한쪽은 코드를 모르니까요. 잘못이 아니라 구조예요. 몇 개월이 반년이 되고, 반년이 1년이 된 이유가 사실 여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지기로 했다

{ }코드·계정나 + AI

1년쯤 되니까 정리가 됐어요. 이 제품이 뭐가 되어야 하는지 진짜 아는 사람은 저 하나뿐인데, 그걸 코드로 옮기는 일을 계속 남에게만 맡기는 한, 이 간극은 영영 안 좁혀지겠구나.

그래서 프로젝트를 계약 범위에서 마무리하고, 이번 주에 코드랑 계정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제 손으로 열어보기로 했어요. 처음엔 당연히 서툴겠죠. 근데 무모하다고 안 하고,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저에겐 하나 확실한 게 있었거든요. 이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은 저라는 것. 개발자가 우리 도메인을 새로 배우는 것보다, 도메인을 아는 제가 코드를 배우는 쪽이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 그렇게 걸어봤습니다.

그래서, AI랑 어떻게 만드냐면

여기서부터가 쇼츠에는 다 못 담은 얘기예요. 개발이 본업이 아닌 사람이 대체 어떻게 직접 만드느냐.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AI 코딩 도구를 끼고 만들어요. 근데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신기한 게 뭐냐면, AI한테는 제가 현장 맥락을 얼마든지 쌓아줄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손님은 왜 이렇게 응대해야 하는지,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함정인지. 개발자한테 말로 옮기다 실패했던 그 맥락을, AI한테는 몇 번이고 다시 쌓아줄 수 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요. 외주를 한 번 맡겨봤더니, 개발하는 사람이 개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어렴풋이 보이더라고요. 뭘 물으면 답이 잘 나오고, 뭘 요구하면 일이 커지는지. 그냥 혼자 코딩만 시작했다면 몰랐을 시점이에요. 발주라는 시행착오가, 뜻밖에 제 안에 개발자의 눈 한쪽을 심어준 거죠.

직접 만들어보면서 또 하나 배웁니다. 간단한 걸 만드는 것과, 매번 같은 결과를 딱딱 내주고 실제로 굴러가게 ‘운영’하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 딸깍 하고 화면 하나 띄우는 건 이제 누구나 해요. 근데 그게 항상 같게 동작하고, 사람들이 매일 믿고 쓰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산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뭔가를 만들고 싶다면, 그 도메인을 아는 사람이 만드는 게 맞다. 도메인은 밖에서 안 보이는 지식이고, 코딩은 AI가 이미 잘하는 영역이니까요.

어느새, 양쪽에 서 있었다

{ }코드·계정나 + AI

그러다 보니 좀 이상한 자리에 서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현장을 아는 도메인의 눈, 그리고 코드를 만지는 개발의 눈 — 양쪽에 다 서 있는 거예요. 도메인 전문가이면서, 발주를 해봤고, 코드를 받아 직접 만들고, 이제 운영까지 하려는 사람. 원래 이건 다 다른 사람이 나눠 하던 역할이잖아요.

개발자가 남의 도메인을 새로 배우거나, 도메인을 아는 사람이 발주에서 멈추는 동안 — 저는 어쩌다 그 전 구간을, 양쪽 시점으로 다 지나오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걸 다 겪은 사람이 흔한가 싶어요. 저도 제가 여기 있는 게 좀 신기하고요. 자랑이 아니라요. AI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자리니까요.

그리고 이게 도착점이라고는 전혀 생각 안 해요.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죠.

이 기록에 대하여

그래서 오늘이 저한테는 좀 특별합니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였어요. 외주를 맡기고, 기다리고, 어긋나고, 결국 코드를 들고 온 이야기. 그리고 다음 주부터가 ‘지금부터’예요. 제 손으로 직접 만지고 굴리는, 진짜 모험.

물론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사업이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지금도 매일 삽질할 거고요. 막히고, 되돌리고, 어제 고친 걸 오늘 또 고치겠죠.

그래서 이 기록을 남깁니다. 잘된 것만 오려 붙이는 회고 말고, 발주하면서 했던 환상, 어긋났던 구조, 앞으로 할 삽질까지. 있는 그대로 적습니다. 그냥 옆자리에서 수다 떨듯이요.

발주해 놓고 갈피를 잃은 분, 업무에 AI를 넣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는 분, 혼자 뭔가 만들다 막힌 분이라면 — 아마 남 얘기 같지 않으실 거예요. 같이 지켜봐 주세요. 앞으로 이렇게 이어집니다.

  • 환상 편 — 발주할 때 품은 기대와, 왜 그게 환상이었는지
  • 동상이몽 편 — 개발자와 어긋나는 지점, 그리고 그게 왜 구조인지
  • 양쪽에 서다 편 — 발주도 해보고 직접도 만들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 만들기 ≠ 운영 편 — 화면 하나 띄우는 것과, 매일 믿고 쓰게 만드는 것의 거리